올레3코스는 온평포구에서 시작해 표선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올레길로 A, B코스로 구분되어 있다.
A코스는 통오름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지나
신풍신천 바다목장으로 B코스는 신산환해장성을지나
신산포구를 거쳐 신풍신천 바다목장에서 A코스와
합류 후 제주민속촌 주차장입구까지 이어진다.

나는 어제 바다가 있는 올레길을 거의 못 걸었다는
핑계로 좀 더 쉬운 B코스로 진행했다.
B코스에서는 신산포구 부근에 중간스탬프가 있고
A코스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중간스탬프가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1) 신산환해장성
온평포구에서 시작해
연듸모루 숲길을 지나
푸른 숲과 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오솔길들을 걸어 내려오면
신산환해장성으로 향하게 된다.

환해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다를 둘러 구축된 성인데
현무암으로 쌓아 올려 그 경관이
나름대로 볼만하다.

제주도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해안선을 따라 지어진
환해장성을 자주 볼 수 있기에
제주도내 환해장성의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성벽이지만
과거 왜구의 침입이 얼마나 많았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모진 역사를 견뎌왔던
제주도에는 이처럼 아직까지도
가혹했던 역사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도의 낭만 가득한 아름다운 여행지들도
역사적 시간 속에서는 비교적 작금에 들어서야
여행지로써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 아닐까 싶다.
2) 신풍신천 바다목장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바당올레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신산포구를 지나
신산리 마을카페에 도착했다.
(현재는 성산봄죽칼국수 신산리라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성산봄죽칼국수 신산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환해장성로 33 1층 2호
place.map.kakao.com

중간스탬프를 찍고
신산리 마을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잔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신풍포구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는 너른 목장이 나온다.
바다와 마주 보이는 목장이
바로 신풍신천 바다목장이다.
드넓은 초원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저들은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봤던 모든 소들 가운데
가장 럭셔리한 소들임은 분명하다.

이곳은 사유지지만
올레길 여행자를 위해
일부가 개방되어 있다고 들었다.

제주도일대에는 이렇듯
올레길 여행자들을 위해
사유지를 개방해 주는 곳이
적잖이 보인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 배려를 잊지 말고 조용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이용해야겠다.)

이곳은 경치가 매우 좋기에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도 보였다.
럭셔리한 소들도 동참하여
경치가 좋다는 것을 증명해 주니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3)표선해수욕장으로
올레3코스의 종점은
표선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제주민속촌 주차장이다.

물론 제주민속촌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종점스탬프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들렀을 뿐이다.
신풍신천 바다목장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
걸어오는 길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올레길이었다.
생각해 보면 올레 3코스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다 싶다.
바다와 길 그리고 수산물 양식장만
줄곧 바라보며 걸어왔던 것 같다.

간혹 바닷가를 바라보며
걸터앉아 휴식을 갖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릴없이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것뿐이었기에
나는 쓸데없는 잡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잡념들은
결국 내가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날아
종점까지 가는 상상까지 하고야 말았다.

마치 아까 신산리를 지나다
바닷가에 줄지어 매달린 채
해풍에 말라가던 오징어가
꼭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황금빛 모래사장이 보일 즈음이 되어서야
우리가 곧 표선해수욕장에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그것은 어느덧 종점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살짝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4) 종점(제주민속촌 주차장)에서
종점에 거의 도착해서야 느낀 거지만
올레3코스는 뭔가 단맛이 없는
밍밍한 코코아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바다목장 후로부터 걸어왔던
그 지루한 길과 시간 덕분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제주도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수산물 양식장도 제주도민의 업을 위한
중요한 일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나에게 있어 올레3코스는
뭔가 특별한 임팩트가 남지 않았을 뿐이다.
표선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레옹이 말했던 것처럼
"오늘 내게 닥친 불행은 과거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라는 말이 뜬금없이 떠오른 건 무슨 연유일까?

어제 바다를 많이 못 봤다는 핑계를 대며
더 쉬운 코스를 선택했던 건 내가 아닌가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
물론 당시의 내가 불행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덜 만족스러웠을 뿐이다.
만약 내가 A코스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보다
시원한 나무그늘과 풀내음이 있는 숲과 오름을
지나왔다면 바다목장 이후의
그 길도 덜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오랜만에 바다와 가까워져
그 길도 반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걸어보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꼭 올레3코스의 A코스도 걸어봐야겠다.
그러면 그 답을 알게 되지 않을까?
결과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걸어보니 A코스나 B코스나 매한가지다'
다른 하나는 '역시 A코스로 돌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역시 나에게 달린 문제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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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는달 #14", 제주 올레2코스, 광치기-온평 올레길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해 식산봉, 대수산봉 정상, 혼인지를 지나 온평포구까지 이어지는 올레길로 산과 밭길을 따라 걷는 15.8km의 나름대로 개성 있는 올레길이다. 이전이야기 :
hokg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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